바람같은 휴가 여행기
여행이란 미지의 세상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과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어떤 홀가분함으로 내게 늘 설레임을 준다.
4박 5일간의 여름 휴가일정을 계획하며 단순한 피서가 아닌
내 안에서 무언가를 비워내고,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것을 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꼭 어디라고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마음내키는 대로
수려한 경관을 찾아서 계곡이든 산이든 가보자고 작정하며
강원도 영월의 칠랑이계곡을 처음 행선지로 잡았다.
[청령포]
그동안 많은 피해를 끼치며 지리하게 내리던 장마비도 그쳐
날씨는 찌는 더위를 예고하는 듯 하다.
가는 길에 단종의 애환이 서린 영월의 청령포에 잠시 들러본다.
경치는 아름다운데 배로만 드나들수 있는 귀양지에서
어린 단종이 겪었을 괴로움과 슬픔이 느껴져 가슴 아팠다.
[주천산의 오장폭포]
드디어 칠랑이계곡에 도착,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는 동안 수마에 할퀸 참상이 간간 비치더니 칠랑이 계곡은
아침까지 내렸다는 비로 어마어마한 물줄기를 이뤄
발담그면서 피로한 몸을 쉬기에는 물살이 너무 셌다.
다른때 같으면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데
위험한 물살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무 그늘 바위를 돌아 흐르는 물에 조심스레 손과 발을 담그니
그 차가움이 뼛속을 파고 드는 듯 하다.
이렇게 물이 콸콸 넘쳐나는데도 맑게 흐르는 걸 보면
물살이 줄어든 잔잔한 날엔 그 맑음이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어울려
가히 환상일 거라는 걸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내일의 여정을 그리며 잠자리에 드니
여행 첫날에의 설렘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 사이 여명이 밝아온다.
잠도 안 오니 날 더워지기 전에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금대봉에 올라가기로 작정했다.
[태백의 황지연못]
금대봉 가는 길에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황지연못에 잠시 들러본다.
전설에 의하면 최부자집에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한테 쌀대신 쇠똥을 끼얹었다던가?
그래서 벌로 홍수같은 비와 벼락이 내려지고 집은 이렇게 연못으로 변했다 한다.
당대의 부자집에서 쌀 한되 시주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으련만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 화를 당하고 말았을까?
모름지기 심성을 곱고 바르게 쓸 일이다.
[기린초]
[하늘말나리]
드디어 말로만 듣던 금대봉으로...
안개에 덮인 산으로 바람이 거세다. 바람막이 자켓을 꺼내 걸쳐입는다.
과연 금대봉은 이름값을 하느라 올라가는 길목에서부터 동자꽃, 이질풀,
까치수영, 나리등 예쁜 꽃들이 가득히 피어 맑고 청초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야생화의 어여쁜 모습에 넋을 뺏기며 오르느라니 정상이 금방이다.
[노루오줌풀]
[동자꽃]
[일월비비추]
[병조희풀]
정상을 밟고 한강의 발원지라는 고목나무 샘터까지 들러서 나오며
몇가지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꽃이름을 알고자 용연동굴앞에서 열리는
야생화전시장에 들러보기로 한다.
태백시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최고의 고지대에 자리한 용연동굴로 향하면서
찌는 햇살과 잠까지 설친 몸에 머리가 다 아프다.
40여분간 동굴을 관람하고 나와 야생화전시장을 둘러보며
궁금했던 이름을 찾아 두개의 야생화 이름을 익힌다.
흰색의 '송이풀', 주황색의 '산솜방망이'
보석을 주운 듯 기쁘기 그지없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일치감치 설쳐댄 몸이 무더운 날씨에
더 이상은 움직이기 싫을 만큼 피곤하다.
산그늘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인 다음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에 들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키로미터 계곡 줄기를 따라 걸으며
무리지어 핀 노란꽃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꽃모양이 비슷한 딱지꽃과 물양지꽃을 잎모양으로 구분해 본다.
[검룡정]
시원한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계곡 물줄기를 따라 30분쯤 걸으니 검룡소가 나온다.
옛날 황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이 못에 이르러 용이 되지는 못하고
물 마시러 온 동네 소들을 잡아먹어 농부들에 의해 메워졌다가 복원됐다는 연못으로
끊임없이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석회암반을 뚫고 나온 차가운 지하수에 손 담그며 땀으로 젖은 몸을 식힌다.
[검룡소]
일찍 일어났다고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닌 듯 하다.
몸이 점점 물에 젖은 솜뭉치가 돼가며 무거워진다.
오늘은 일찌감치 쉬기로 하고 아는 사람이 휴게소와 같이 운영하는
삼척의 숙박업소에 들러 여장을 푼다.
한잔 하자는 청도 뿌리치며 씻고 자리에 누워 달게 잔다. 아마 코까지 곯았을게다.^^
[미인폭포]
창문으로 햇살이 그득하게 비칠 무렵 눈 떠 창밖을 내다보니
저 앞에 폭포줄기가 하얗게 보인다. 미인폭포라 한다.
왜 미인폭포인지 안가볼 수가 없다.
등산화 신고 등산복 차림으로 30분쯤을 걸어 가니 장엄한 물소리와 함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이쪽 고원지대에 미인이 많다는데 일설에 의하면 어떤 한 미인이
남편이 죽고 난 후 그 남편만한 낭군을 못 만남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투신자살한 곳이라 해 미인폭포라 이름붙여졌다 한다.
[미인폭포 주변]
이젠 어디로 갈까.
거침없이 내리쬐는 햇살과 푹푹 찌는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에서 쉬고 싶었다.
이곳에서 알게 된 정선의 구절리 레일바이크를 타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 더위에 무리일것 같아 가을철로 미루기로 했다.
아마 단풍 물드는 선선한 가을이 오면 레일바이크를 타며 바라보는 경치와 재미가
나를 행복하게 하리라. 많이 기대된다.
경치 좋고 시원한 계곡을 찾아 움직이던 중 바라본 오대산 소금강의 하늘을 찌를듯
빼어나게 솟아 있는 절경, 무어라 더 표현을 못할만큼 탄성이 절로 나온다.
[덕우리 강변]
정선의 덕우리 강변에 이르러 하루를 쉬기로 한다.
느티나무인지 시원하게 늘어진 나무 그늘에 텐트를 치고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으로 첨벙첨벙 물속으로 들어가 본다.
오싹할 만큼 물이 차다.
쌀 씻어 저녁밥을 짓고 삼겹살 구워 소주 한잔에 곁들이니 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설핏 저물어가는 석양빛을 바라보며 약간의 술기운으로 몽롱해진 마음이 왠지 슬픈 듯,
쓸쓸한 듯 아련한 감상에 빠져들며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하늘엔 반달이 걸려 있고 하나 둘 빛나기 시작하는 별, 얼마만에 바라보는 밤하늘인지...
띄엄띄엄 설치한 텐트에서 간간 비치는 불빛외에 가로등조차 없는 조용한 마을의
어두운 밤하늘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떠있다.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하늘에
은하수가 곱게 흐른다.
때때로 긴 꼬리를 남기고 사라져가는 유성의 발자취,
그들은 어디에서 오늘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밤을 기억하게 될까?
[덕우리 쉼터]
날이 밝으면서 강과 산언저리로 뽀얗게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맑은 날씨에 찬란한 일출을 기대했던 터라 내심 실망은 됐지만
고즈넉한 시골 풍경에 나름대로의 평화가 느껴진다.
햇살이 짙어지면서 안개가 걷혀가고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따라 걸어가본다.
종아리를 간지르며 흐르는 물의 감촉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정선의 아라리촌]
오후가 되면서 어디론가 또 가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줄 동해바다를 따라 드라이브하며
여행의 기분을 만끽해본다.
뭉게구름이 한가하게 노니는 하늘과 그 밑에 파랗게 드리워진 바다는
짙푸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멋진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길가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아스팔트땅에서 끼쳐오는 지열에도 불구하고
샛노란색의 루드베키아가 싱그럽게 피어 있다.
[루드베키아]
[천곡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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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 촛대바위]
가는 곳마다 장중하게 펼쳐진 산맥들이 대자연의 신비를 일깨우며 내게 감동을 준다.
때로는 거대한 산맥을 돌며, 때로는 잔잔한 계곡에 쉬어가며,
때로는 가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만큼이나 한가한 듯,
그러면서 나름대로는 부지런히 다닌 여행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끝이 없는 대자연 안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인
나 자신을 들여다볼수 있지 않았을까?
필요없는 욕심을 비우고 마음의 평화와 삶에 대한 잔잔한 성찰을
조금쯤은 얻을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청송 주산지]
[용계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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