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대를 가지고 오른 흘림골은 기대한 만큼 만족도 큰 산행이었다.
지난 5월 8일 첫 등산을 시작한 이후 산악회를 따라 10번째 산행지로 오른 흘림골의 단풍산행은
내가 오로지 이 단풍을 보기 위해 지금껏 산에 오르는 연습을 해오지 않았나 하는 기분까지 들게 했다.
여행을 너무 좋아하기에 2년 전까지 바다도 볼겸 주말이면 승용차로 수도 없이 계절마다 즐겨 오갔던 한계령길.
오늘은 입구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며 절정에 오른 단풍을 실컷 만끽할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면서
게으른 성격에 어떻게 등산을 다 할 생각을 했었는지 스스로의 선택에 뿌듯해지며 내 자신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무척이나 많은가 보다.
두대의 버스를 채우고도 남는 107명의 인원으로 해서 좌석문제로 운영진이 골치를 썩는 모습이더니
결국엔 7인승 차 한대가 긴급 투입되고, 운영진 몇 분은 바닥에 앉아 가는 것으로 예정시간을 15분 넘긴
7시 15분쯤 당산역을 출발하여 11시경 구비구비 한계령 고갯길을 넘어간다.
보라,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는 한계령의 저 비경들을...
골짜기마다 울긋불긋 곱게 수놓은 단풍의 오색창연한 물결이
눈부시게 부서져내리는 시월의 햇살아래 너무도 찬란하게 펼쳐져 있다.
산자락을 물들이며 이제 막 절정에 오른 모습은 어느 화가가 그린들 이만한 솜씨를 부릴수 있으랴!
봉우리마다 갖가지 형상으로 신비롭게 늘어선 바위와 어울려 있는 그 모습은
오직 신만이 연출할수 있는 최대의 걸작이었다.
소나무와 잣나무와 단풍이 어우러진 능선위로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이 높고 맑게 열려져 있다.
나는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풍경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차창밖으로 열심히 내다보며
가슴속에 하나하나 꼭꼭 묻어둔다.
내 너를 죽을때까지 소중히 간직하리라.
11시 40분쯤 흘림골 입구에 들어서자 우와~ 이 수많은 인파들!
20년만의 개방이고 절정의 가을 단풍을 만끽하기엔 더 없이 좋은 기회인지라
이미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일 줄은...
몇백명은 좋이 되는것 같다.
매표소에서 산악회별로 입장시키느라 시간이 지체되면서 한 30분쯤 줄서 기다리는 동안,
밀려서 못 올라가고 도로 내려가는 중이라고 몇사람이 겁을 주면서 지나간다.
몇번의 동반 산행과 개인적인 만남으로 단짝이 된 선영씨는 성격도 급하지,
그럼 다른데로 행선지를 바꿔야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이다.
나는 오히려 바쁘게 오르며 힘들어 하는 산행보다 볼것 다보며 천천히 오르는 산행이 나에게 맞을 듯 싶어 느긋해진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고 사교성 좋은 선영씨 덕에 친구가 된 영숙씨와 셋이서 쭉 산을 오른다.
셋이 같이 다니는 우리를 보고 해칠님이 미녀 삼총사라고 듣기 좋은 이름을 붙여 준다.
(해칠님 인기관리에 지장 있겠습니다.^^)
여심폭포까지 오르는 동안 산은 생각한 것만큼 그리 밀리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가 유지된다.
여심폭포 앞에서 셋이 한컷 찍고 다시 오르자 그때부터는 많이 밀리는 듯하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단풍은 져가고 나무들이 점점 앙상해진다.
등선대중턱까지 오른 후 시간이 많이 지체된 관계로 12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다 간식시간이 주어졌다.
간식거리로 나누어준 감자는 손도 안댄채 청풍님의 족발을 안주삼아 맥주 한잔 들이켜니 캬아~ 세상 부러울게 없다.
체면 불구하고 다시 청해서 한잔...
서로서로 내어놓는 과일에 야채 샐러드에 마지막 족발 뼈까지 다 먹으니
누구 말마따나 살빼러 산에 왔다가 살만 더 쪄가는 격이 돼버렸다

간식을 마치고 다시 하산하기 시작한다.
12폭포를 지나고, 예전 누군가 위조 엽전을 만들다 걸려서 이름붙었다는 주전폭포를 지나 오색약수를 거쳐오면서
갖가지 바위의 형상과 맑디 맑은 계곡물과 색색의 단풍이 이루어내는 조화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다시 한번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등산을 계속한 내 자신에 대해 기꺼이 자랑스러워 하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흘림골의 비경에 너무 혼을 빼앗겨설까 잘 가다가 그만 한쪽 발이 계곡물에 빠져 신발과 양말이 다 젖어버렸다.
신발을 벗어 양말의 물기를 짜내고 다시 신자 다른 사람은 다 잘가는데 어째 그러냐고 청풍님이 한마디 한다.
옛날 선녀적 목욕하던 생각하고 그리워서 발만이라도 담가봤다고 농담하려다 그냥 삼킨다.
깎아지를듯 솟은 바위와 산봉우리에 쌓여 오후 세네시에도 산중은 벌써 어두워지는듯 하다.
괜히 마음이 바빠지려 한다. 오색약수에서 손 한번 찬물에 담그고 제1주차장으로 영숙씨와 사이좋게 간다.
선영씨는 아는 사람들과 약속이 돼서 바쁘다고 일찍 가더니 주차장에서 생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
더 기다려야 된다나? 싱겁기는...ㅋㅋ
버스 한대가 우리를 태우고 밥먹는 장소로 데리고 가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후 다섯시가 넘었으니 거의 저녁이나 마찬가지다.
선지국이 나왔는데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배가 엄청 부르다.
식사를 마쳐갈 즈음 우리에게 장소를 제공한 집의 아들인지가 나타나 약간의 불상사를 일으킨 후
덕분에 좀 서둘러서 귀가길에 오르니 오후 여섯시가 넘는다.
올라오면서 한계령 길의 그림같은 단풍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지만 벌써 깜깜해져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의자에 앉아 잠깐 눈붙이고 깨어보니 차창밖에 휘영청 밝은 달빛이 그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달빛...
갑자기 가슴 속이 알지 못할 그리움으로 가득 차 한참 동안 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낮동안의 화려한 단풍과 밤하늘의 그윽한 달빛에 취해 밀리는 길을 오면서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내 생을 사는 동안 추억 속에 빛날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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