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여행
오랜만에 좀 먼 길을 여행하게 됐다.
그것도 혼자서...
이유는 친정에 쌀 가지러 간다는 명분이지만
쌀이야 어디서 사 먹으면 어떠랴.
그보다는 그냥 부모님도 뵙고 내 자라난 고향에
봄바람을 쐬러 가고 싶은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의존적인 성격 탓인지 차를 타게 되면
주로 운전석 옆자리에 앉는 걸 좋아하고
내가 운전하더라도 하다못해 꼬맹이 아들이라도 옆에 태우고 다녔지
이렇게 먼 길을 혼자 가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이번에도 아들을 데려가려 했지만 처음엔 갈 듯 하더니
TV에 빠져
가기를 마다한다.싫으면 말래지, 오히려 홀가분하니 잘 됐네 뭐...
뽀얗게 먼지를 이고 섰는 차를 자동세차장에서
줄서서 기다렸다가
샤워시키고 드디어 출발...도로가 한산해 다들 봄바람 쐬러 교외로 나갔으려니 싶어
꽤 막히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120~130km로 막 달려대는 속도를
서해안 고속도로 규정 속도인 110km로 신경써서 줄여야 할 만큼
전혀 막히지 않았다.
날씨는 그야말로 봄날이었다.
처음엔 테이프도 듣고, FM라디오도 틀어가면서 가다가
문득 혼자만의 여행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 꺼버렸다.
그러자 모든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 오는 듯했다.
아직도 나무들은 겨울 모습 그대로 앙상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완연한 봄이다.
길 옆에는 냉이와 그외 이름모를 풀꽃들이 희고, 노랗고,
붉은 색등 여러가지 색색의 꽃들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어느 새 봄은 우리 옆에 바싹 다가와 있었구나.
느껴지는 공기가 너무도 달콤해
감미로운 슬픔 같은 것이 다 생길 지경이었다.
이게 얼마만에 하는 여행인가.
작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떠오른다.
몇 명의 죽이 척척 잘 맞던 고향 친구들.
칼국수 하나를 먹더라도 제부도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먹고
일산 오리고기 등, 맛있는 것만 골라서 찾아다니며 즐기던 친구들이
그 즈음에
이러저러 해서 각각 멀어지게 됐다.한 동네 살면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유학간 딸 뒷바라지차 호주로 떠나고
다른 친구들도 사정상 집에서 꼼짝 못하게 될 일들이 생겼다.
사무실에선 일을 도와주던 조카가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큰 물이 그립다며 미국으로 떠나고, 지극히 개인적인 어떤 이별까지...
모든 것은 한꺼번에 찾아왔고 졸지에 철저히 혼자가 되어
사무실에서 칩거 아닌 칩거를 하며 컴퓨터와 책에만 빠져 몇 개월을 지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나서게 됐으니
나로서는 가라앉았던 일상의 틀을 깨는 시도인 셈이다.
고향이 점점 가까워 지면서 화창한 날씨가 잔뜩 흐려져
꼭 비라도 올 듯 싶다.
어째 내가 세차만 하면 사흘을 못 넘기더니
오늘은 기어이 하루도 못 넘기나 보다.
길 옆에서 싱싱하니 군침이 도는 딸기를 한 상자 사서 차에 싣는다.
부모님 모시고 간월도라도 가서 회 한 접시 사드려야지,
작심하며 친정집에 들어서니 부모님이 반겨 주신다.
언제 만들어 놓았는지 엄마는 송편과 도라지 튀김을 내놓으며 밥을 차려 주신다.
작정한 것이 있기에 나가서 회먹고 오자고 했더니
엄마 대뜸 하시는 말씀이 비싼 돈 들여 뭐하러 나가서 먹느냐고,
그냥 집에서 먹으라신다.
할 수 없지 뭐...
그냥 주시는 대로 받아 먹고 아버지께는 가져간 술 한 잔 따라 드렸다.
아버지가 나가시고 나자 엄마가 씽크대 문을 열더니 돈을 내놓으신다.
100만원이라며 아무 소리 말고 쓰라시는데,
저번에 주셨던 300만원도 그렇고 무슨 돈이 있다고 자꾸 주시는지.
거절해도 부득부득 밀어주신다.
니들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시골 살림에 6남매 키우시느라 잠시도 편히 쉬지 못하고
고생만 하셨는데 이렇게 짐이 되는가.
엄마 생각에 아들 3형제는 많지 않은 재산이라도 분배해 주는데
딸 셋은 출가외인이라고 못챙겨주시나 싶어
돈이 모이는 대로 자꾸 주고 싶어 하신다.
그렇더라도 칠순이 내일 모레인데
우리가 그런 걱정을 안끼쳐 드릴만큼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골분치고 참 고우셨던 어머니,
성격마저 여성스러워 딸은 이쁘게 키우고 싶으셨다며
검정 고무신이 태반이던 어린 날에 알록달록 예쁜 운동화를 사주어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뻐기는 기분이었던가.
옷도 비교적 깔끔하게 갖춰 주셔
선생님한테 용의가 단정하다고 칭찬 받게 하고
내 또래 아들이 있었던 어느 선생님은
나를 며느리감으로 점찍으셨다는 후일담이 있다.
우리 딸들은 공부도 잘하고, 말썽 안 부리고, 예뻐서
시집 잘 갈 줄 알았는데 기대에 못 미쳐 속이 상하신다는 엄마,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정말 맘이 아프다.
나라를 부강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킨다거나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는 거창한 야망이야
내 꿈에서조차 먹어본 적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꿈은 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돌이켜본 지금은 아쉬운 게 너무나 많다.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흐리고 바람까지 불어 좀 추웠다.
구간구간 밀리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차량 소통은 원활했다.
결혼식을 치루고 공항에 신혼여행차 올라가는지
분홍색 화사한 띠와 꽃으로 장식한 차가 숨가쁘게 달려간다.
그런데 저게 뭐냐.
"허벌나게 잘 살 겁니다."
"우리 지금 애 만들러 가요."
"누구 ♡ 누구(이름을 미처 못봄)"
이런 글들이 매직으로 쓰여져 있었다.
저걸 신랑신부가 썼을리는 없고 짖궂은 신랑 친구들이 썼을게 분명한데
저런 친구들이라면 함 팔러 가서 신부집 속깨나 태웠을 것이 틀림없다.
아마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신랑 단다고 발바닥에 상처 몇개쯤 생길걸.
'허벌나게'라는 걸쭉한 사투리도 우습지만
"우리 지금 애 만들러 가요."라는 말이 얼마나 웃기는지.
그래,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인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애 만드는 거야 당연하지.
암, 당연하구 말구.
내려갈 때는 일사천리로 내려갔지만 올라오면서는 화성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여유를 부려 보았다.
화성 휴게소에서 올라오느라니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서
산자락으로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 그 정경이 자못 환상적이다.
내가 저곳에 들어가면 자연히 선녀가 될 듯한 기분이 들만큼...
하루 동안에 참 많은 기후 변화가 있다.
맑다가, 흐리다가, 바람불다가, 안개까지.
사람 사는 것도 이러려니.
맑은 날만 천년 가는 것도 아니요, 흐린 날만 계속되는 것도 아니니
사노라면 찬 바람에 움츠러들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
행, 불행이라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리지 않겠는가...
저 안개만 해도 그렇다.
나는 이렇듯 환상적으로 보지만 누군가는 시야를 가려
운전에 방해된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내게 주어진 인생이니 좋은 싫든 어루만지며 이루어내야 하는 삶...
얼마나 좀 더 애정을 가지고 가꾸느냐에 따라 내 삶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어둠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그토록 기승스러웠던 추위도 결국은 물러가고 이렇게 봄이 찾아오듯이
열심히 사노라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부모님께 또한 제일 큰 효도가 되리라.
결국은 이 모든게 오롯이 내가 치루어야 할 내 몫이란 걸 느낀다.
화사한 봄을 맞으며 혼자 한 여행에서 얻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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