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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주왕산을 오르며
여러 가지로 기대가 많았던 산행이었다.
가족동반으로 여행을 잘 다니는 어떤 친구가 다녀본 여행지 중에서
제일 예쁜 산이 주왕산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비록 차로만 다니는 여행이었지만 나름대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
다고 자부했었는데 주왕산은 안가본 터라 한번 가봐야지 별렀던 참이
었다.
얼마전 TV에서 주왕산의 사계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화면에서
보는 주왕산은 더욱 호기심과 설렘으로 나를 유혹했다.
물에 잠긴채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한껏 뿜어내는 주산지의 모습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서 산악회에 건의해 이뤄진 산행이었는데...
출발부터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5시 40분까지 이마트 대한통운앞에 나가 있어야 되는 걸 부랴부랴
서둘렀어도 집에서 나간 시간은 5시 47분, 막 문을 열고 나가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왜 여태 안나오시는 겁니까?"
부대장님의 약간 짜증기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네, 지금 나가고 있어요." 막 뛰어간다.
54명의 인원이 움직이느라 대형버스 1대를 채우고 15인승 미니버스
1대가 기다리고 있다.
죄송하다고 인사하면서 좌석에 앉아 당산역으로 이동한다음 다시 자리
배치해서 큰 차로 옮겨 타고 6시 20분쯤 출발, 자유님과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간다.
그런데 오늘도 컨디션이 안 좋은가. 대장님 말마따나 종합병원인지
몸이 또 영 안 좋아진다.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대장님은 술 마시지 말고 잠 좀 잘 것이지
하고 나무랜다.
남 속도 모르고 억울해 죽겠다. 아무래도 긴 여행은 내게 무린가 보다.
번번히 이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건강관리에 좀더
신경 써야겠다.
11시 좀 못돼 경북 청송군 부동면에 위치한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해발 720m, 이 정도면 문제없이 올라갔다 오겠지 했다.
몸풀기 스트레칭도 하고, 단체사진도 찍고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다.
나는 혹여라도 일행을 놓치고 미아가 될세라 부지런히 사람들을
따라간다.
그런데 왜 이리 날씨가 무더운가?
자꾸 숨이 막히더니 깔딱고개를 오르면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저히 더 움직이지를 못하겠다.
남들한테 오해받으면서까지 잘 챙겨주시던 대장님은 벌써 앞서고
후미를 맡은 부대장님이 이 상황에 난감해한다.
도로 내려가야겠다며 그냥 주저앉아 얼굴 하얗게 질린채 있노라니
회장님이 대장님께 무전을 친다. 풀꽃향님이 어제 과음으로 도저히
산행을 못하겠다고 내려간다 한다나 뭐라나?
여러 가지로 사람 미치게 하네. 정말 그게 아닌데...
알았다는 대답이 오더니 다시 또 무전, 폭포까지 어떻게 올라오면
무슨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인 것 같다.
지금도 당장 죽을 것 같은데 폭포는 무슨 놈의 폭포, 은근히 속으로
열뻗쳐하며 그냥 퍼질러 있다. 그래도 그 말에 어떤 주술이 걸렸는지
한 동안 쉬고 있노라니 좀 괜찮아지며 다시 움직여진다.
부대장님이 배낭을 대신 매준다. 15인승 버스까지 직접 운전해서 오고,
이 더위에 자기 것도 무거울텐데 너무 미안해 죽겠다.
회장님이 지팡이를 내주며 나을 거라고 짚고 가란다.
양쪽으로 짚고 의지하니 훨씬 낫다.
좀 살만한지 이제 조금씩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이 달래듯 얼굴을 어루만지고, 어여쁜 꽃들이 반기어준다.
주황색의 하늘말나리가 7월 중순의 녹음 짙은 그늘 아래서 여기저기
곱게 피어 청순한 듯 요염한 듯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회장님은 카메라에 꽃들의 모습을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가다보니 아름드리 큰 소나무들이 빗살무늬로 파인채 상처입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안내표지판에 의하면 1960년대 중반 경제사정
에 의해 3년간 송진을 채취하고 벌목하느라 그랬단다.
그러다가 1976년인가?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단됐다는
데 상처입은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쉬엄쉬엄 힘들게 움직여 정상쯤에 도착하자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준다.
대장님이 바보 같이 나온 사진 하나를 찍어주고 맡겼던 도시락을
내놓고 바삐 가고, 자유님과 다른 여자분, 우리 셋 이렇게 다섯이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어느 정도 추슬러진 몸에 배도 고팠던지라 너무 맛있다.
화사하도록 아름다운 나무 그늘 아래로 계곡을 끼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느 만큼 갔을까, 눈앞에 그림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을 타고 제1, 제2, 제3 폭포가
흐르는데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 신비로운 절경앞에 중도하산하지 않고 기어이 올라오길 잘했다고
몇 번이나 감탄한다.
저 바위 위에 내가 올라가 있으면 그대로 선녀가 하강한게 되는데 하며
농담하자 힘든 몸으로 여기까지 올라온게 인간승리라며 추켜세우던
부대장님도 기가 막힌지 바위 아래로 떠밀고 싶어하는 표정이다.
이 절경을 그냥 놓칠수는 없지, 사진 몇장을 찍는다.
사람 얼굴 닮은 시루바위를 올려다보며 또다시 감탄하고 주차장으로
도착하니 한창 등갈비가 구워지고 있다.
꼴찌로 도착해 선봉부대보다 1시간 반이나 늦었다고 예정보다 훨씬
늦은 도착시간 때문에 기대했던 주산지는 갈 엄두도 못낸다.
아쉬웠지만 늦어지게 한 장본인으로서 할 말이 없고 몸이 힘드니 더
구경할 여력도 사실은 없다.
후일 건강한 몸으로 여유있게 다시한번 와야지 생각한다.
이 글의 제목을 여름날의 주왕산으로 정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될 수 있으면 가을에 한번 도전해 봐야지 하는데 잘될지는 모르겠다.
몸은 힘들었고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줘서 미안해하며 오른 산이었지
만 이뤄냈다는 사실 하나로 보람을 느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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