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여행기, 풍경

간첩과 함께 한 석룡산 산행기 ^^

바이올렛~ 2005. 6. 20. 14:55

몇 번이나 갈까말까 망설이다 감행한 산행이었다.
간밤에 마신 알콜기가 덜가셔 푹 쉬고 싶은데,

매주 챙기면서 전화해주신 분의 성의와 약속을 저버릴수 없어

결국은 일찌감치 준비하고 나섰다.
6시 45분부터 7시까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도 계속 갈등이 생긴다.

그러다가 버스는 왔고 좌석을 배정받아 앉고 나니 이젠 어쩔 수 없다.

 

속이 안좋아 나누어준 김밥도 못 먹고 졸면서 애매한 유리창에 머리 박기를 몇 번,

드디어 우리가 올라야 할 경기도 가평의 석룡산 입구에 도착했다.
해발 1,147.2m 이렇게 높았었나? 이젠 죽었다!!
회장님의 구령에 따라 간단한 몸풀기가 시작된다.
산행 시작, 그래도 자세가 나오는게 나도 이제 산꾼이 다 돼가나 보다.

(아니 벌써?? 꿈만 야무졌다.)

 

싸리꽃이 천지다.

조무락골 입구 도로에 한 싸리꽃은 자기가 라일락꽃인줄 아는지 커다랗게 서서 피어있다.

깜박 속았다.

보라색으로 탐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누님, 같이 가요."
후미를 맡은 부대장 간첩(카페 닉네임)이 포섭을 시작한다.
그래, 컨디션도 제론데 후미에서 천천히 올라가는게 낫지.
이참에 정말 간첩인지 아닌지 밝혀내서 상금이나 타야지.
네분의 아주머니를 포함해 우리 일행은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올라간다.
그래도 간첩하고 나하고가 빠른 편이라 좀 일찍 가면 쉬면서 일행을 기다려준다.
이름하여 '후미 선봉부대'.

이름 멋있다.
역시 간첩이라 이름짓는 것도 잘하는군, 심증을 굳힌다.

 

사람들 손을 많이 타지 않는 곳이라선지 모든 나무들이 울창한게

녹음 짙은 그늘이 시원함과 청량감을 준다.
5월에는 어린아이 손바닥같던 잎사귀들이 우리 작은아들 손바닥만큼 자라 있다.
석룡산 계곡의 이름이 조무락 골이라 한다.
한자로 鳥舞樂, 새들이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란 의미인 것 같다.
새소리가 유난히 크고 맑은게 계곡의 시원스런 물소리와 어울려 이 세상 같지가 않다.

 

한참 올라가는 중에 귀여운 다람쥐가 우리 앞을 가로질러 간다.
"산다람쥐네."
내가 말하자 간첩 대번에 허리 굽히며 거수까지 하면서
"어이쿠 대장님." 한다.
거봐 간첩이 틀림없다니까.

등반대장 닉네임만 듣고도 저리 군기가 바싹 들어서 인사올리지 않는가.

(누구는 좋겠다. 이런 충성을 다받고.^^)
간첩의 전화를 받아서 내쪽으로 번호를 돌린다.
찍히는 발신자 표시에 '날 모르면 간첩 011-9882-****'
이건 또 뭐야? 허허실실법인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우리가 얼마나 느린지 아무리 가도 전방팀은 고사하고

중간팀 그림자도 한번 못마주친다.
나는 계속 땀을 흘리며 물만 연신 들이킨다.

생수병 두병이 바닥나기 시작한다.
간밤에 마신 주독이 다 빠져나가는 듯하다.
도대체 얼마를 마신거야?

백세주에다 복분자에다 노래방에서 맥주, 해장국 먹는다고 또 소주까지

(이 많은 술을 혼자 마셨다고 오해 마시길.

여러명이 분위기에 젖다보니 종류만 많아졌다.)
내가 생수 두병을 바닥낼 동안 간첩은 한 모금도 안 마신다.
그렇겠지, 공작을 하다보면 몇날 며칠을 물한모금도 안마시고

버텨야 할 일도 많을텐데 얼마나 훈련이 잘됐으면.


이제 신고할 일만 남았다.

본인 말로는 신고보다는 잡는게 상금이 더 많다는데 어떻게 잡지?

나한테까지 잡힐거면 여태 있지도 않았을거고,

이쁜 아가씨 소개시킨다 하고는 112에 신고할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런 흑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의 착한 간첩,

쉴때마다 앉을 자리 찾는 나를 위해

앉을 자리까지 배려하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점점 마음이 약해지려 한다.


어떡할까? 드디어 협상을 시작한다.
"저기, 요즘 간첩 신고하면 3천만원쯤 나오나?

신고 안할테니 그냥 1,500만원만 나 주지."
"싫어요, 그냥 신고하고 저 1,500 주세요."
음, 만만치가 않군. 벌써 자본주의 구조에 물들어 버렸단 말이지?

그래도 나한테 1,500 남는건 마찬가지니 그렇게 하든지.

혹시 올라서 5천만원 나와도 그냥 3천 받았다고 시치미떼고 1,500만 줘야지.

머릿속에서 계산이 복잡하다.

 

요즘 간첩은 재롱도 잘 부린다.
아이들을 가르쳐선지 몸 다보이게 나무에 숨어서는 나 찾아봐라 하질 않나,

계곡에선 물방울 튕겨서 옷 다 젖게 하지 않나.

하는 짓이(미안^^) 꼭 애들 같고 귀엽다.
하긴 군대도 신세대 식으로 피자 나오고, 인터넷이 보급화 됐다는데 간첩도 시대에 따라야지.

그런다고 내가 속을줄 알고?

 

"다음주에 두타산 가는데 오실거죠?"
"작년에 갔던 곳인데? 힘들어서 못가."
"그럼 동네 가서 현상수배 내리고 막 떠들거예요."
협박까지 한다.

이거 신고는 고사하고 오히려 포섭당하게 생겼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후미의 네분이 영 안 오셔 바위 위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산악회팀과 말문이 트였다.
어쩌다가 농담한다는게 간첩과 내가 부부가 돼버렸다. ㅋㅋㅋ..

간첩 죽는다고 뒤로 넘어간다.
앞으로 장가가는데 지장 많겠다.

안됐다.


드디어 간첩이 무전기로 접선을 시도한다.
"회장님 나오세요."
회장님 전직이 무장공비라더니 잘도 통한다.
정상 어귀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중간에 한분이 어디 가시고 우리 다섯명이서 점심을 먹는다.

아침도 못 먹은 속에 부랴부랴 사온 김밥이 안 넘어가 다른 사람 밥으로 대신한다.
반찬이 맛있는지 꿀맛인데 많이는 못먹겠다.

 

하산길...
계곡을 따라 여전히 후미에서 천천히 내려간다.
천천히 가니 힘은 덜 드는데 우리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듯하다.
회장님이 무전을 통해 빨리 내려오라 한다.

결국 간첩은 일찍 내려가고 나는 이제 잡을 기회를 놓쳤다.

 

전화벨이 울린다. 간첩이다.

쭉 내려오면 계곡에 갈비구이 파티가 열려있다고 거기로 오란다.
맛있는 갈비구이에 소주잔이 오간다.

이제 술 얘기만 들어도 신물이 나 한모금도 안마신다.
갈비도 두세쪽 먹고 만다.


갈비파티가 끝나고 드디어 귀경길, 다시 또 쿨쿨 자면서 온다.
결국 간첩신고는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악회를 위해서...
인생에 있어서 돈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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