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여행기, 풍경

봄의 향연 속으로

바이올렛~ 2005. 5. 5. 14:33

  봄의 향연 속으로

 

고향에서 친구가 올라온단다.
시이모님의 딸이 일요일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남편차로 올라왔다가 용산에 있는 언니네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언니네 차로 내려갈 예정이라 한다.


고향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6년내 죽어라고 붙어다니던

세명의 친구가 모처럼 만나 가까운 근교에 바람이나 쐬러가자 약속이 되어

내가 차를 몰고 결혼식이 끝날 시간에 맞춰 공군회관으로 갔다.
먼 세월을 돌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비형간염에서 급성 간경화로 진행됐다는 그 친구를 위로할겸 만든 자리였다.


공군회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친구를 만나 양평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화창했다.

언제 이렇게 봄이 깊었던가!
나뭇잎은 싱그러운 연두빛으로 물들어가고,

목련이며 개나리, 진달래가 앞다퉈 한창이다.
벚꽃도 만개해서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화사한 빛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손에 잡힐 듯 달콤한 봄의 열기가 그동안의 메말랐던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애."
북한강 줄기가 환히 내다보이는 강변을 따라 드라이브 하면서 시골친구가 너무 좋아한다.
어느 뛰어난 화가가 있는 솜씨를 다 부려놓은 듯 강줄기를 따라 펼쳐보이는

황홀하기만 한 봄의 정취에 나는 숨이 막히는데 친구는 속이 확 트인단다.
꿈속같이 감미롭고 몽환적인 풍경 안에서 모든 사물이 다 반짝인다.
꽃들도 반짝이고, 나뭇잎도 반짝이고, 떨어져내린 벚꽃의 꽃잎도 반짝이고,

바라보는 내 마음도 반짝인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충만감, 이렇게 좋은 계절에 좋은 곳에서 친구와 마주할수 있음이 행복하다.
일과 사랑과 우정이 내게 있는데, 무얼 더 욕심을 내겠는가!

강가에 자리잡은 근사한 까페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는다.
나무사이로 부서져내리는 봄의 햇살...

 

양평 '들꽃수목원'을 들러본다.
1인당 요금이 3,500원, 셋을 합하여 10,500원, 표를 끊고 들어가니

서너평 되는 공간에 방향제서부터 차종류까지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장소다.
이런걸 사려고 표끊고 들어온게 아닌데 하며 후회 비슷한걸 하는데 나가는 문이 따로 보인다.
그럼 그렇지...
아기자기한 들꽃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달고 늘어서 있다.
오며가며 많이 봤어도 이름을 모르겠던 풀꽃들이

여기에서 제 이름을 찾고 서 있길래 열심히 외워봤지만

그 머리가 어디가나, 밖에 나오니 깡그리 잊혀진다.
아줌마 아니랄까봐 세 친구가 모두 똑같다.


 

강변을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산책하다가 다시 차에 올라타고 한바퀴 돈다.
짧은 봄의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어간다.

양평쪽 분위기 좋은데는 꽉 잡고 있다고 장담하는 서울친구의 안내로

미사리쪽 강가에 바싹 붙어있는 '초대'라는 한정식 집으로 들어선다.
꽃과 나무로 잘 조성돼 있는 입구로 들어서자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이

옛날의  아련한 그리움과 설렘으로 벌써 우리를 초대하는 듯하다.

창가에 자리잡고 앉아 우아한 표정으로 정식 3인분을 시킨다.
꽤 비싼 금액인데 서울 친구의 선심이다.
음식의 맛이며 분위기가 친구의 자랑대로 나무랄데가 없다.
맥주 한 잔 곁들이며 음식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이야기에 취하는 사이 바람이 부는가
창밖으로 화르르 꽃잎이 진다.

 

"이렇게 우리 셋이 마주앉아 있는게 꿈만 같다.
우리 예전에 같은 집 지어서 1층, 2층, 3층집에 모여살자 그러지 않았니?
그런데 언제 이렇게 나이만 먹었대냐?"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며 시골친구가 말한다.
그래 우리 참 어지간히도 붙어 다녔었지. 소문날 정도로...
희희낙락하며 몰려다니던 우리를 보고
"너네들처럼 철모르고 놀때가 좋을 때지. 커봐라. 그런 시절 다시는 없다는걸 알테니."
하시던 동네 아주머니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아주머니보다 더 나이먹은 지금에 서로의 주름져가는 얼굴을 바라보니

세월의 빠름이 무상하도록 실감된다.
이게 우리들의 현실일 수밖에 없는 자화상이구나, 싫지만 어쩌랴.
흐르는 저 강물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겠지.
먼 훗날, 우리는 다시 옛날 일을 되새기며 오늘의 일을 기억해낼런지...

 

도도한 빛으로 흘러가는 강줄기를 따라 어둠이 내린다.
봄은 점점 연분홍 숨결을 머금으며 저물어 가고, 우리의 가슴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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