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어느 등짝
김미영
누가 이 섬 안에 부려놓은 바위인가
녹동항 배에 실려
열세 살 소년의 눈에 여태 남은 어느 등짝
여기까지 업고 와 등을 돌린 그믐달
칠십년 흘렀지만 단 한번 보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그리운 서울 한쪽
창파에 떠 있지만 소록소록 소록도
한센병의 섬에도 연애질은 있었나보다
눈 한쪽 귀 한쪽 없어도 비익조 사랑은 남아
때마침 후드드득 한소절의 소낙비
팔뚝에 낀 우산으로 외려 나를 받쳐준다
한시도 내리지 못 한 십자가 같은 저 등짝
<차상>
드라이브 스루
김경아
뫼비우스 띠를 따라 용케 잘 오셨습니다
우주행 티켓은 마침 두 장 남아 있군요
당신의 홍채 인식이 결재를 끝냈습니다
이곳의 티 메뉴는 블랙이 전부입니다
쓴맛에 뺏긴 시선 흔들림을 유념하세요
목적지 가는 동안은 구매취소 불가입니다
유리벽 사이 두고 봄 색채 지워졌다고요
여기선 기계음만이 대화가 허용됩니다
다음에 찾게 될 때는 무선 헬멧 쓰세요
<차하>
격세지감
김나경
'개'라는 접두사의 질기고 긴 수난시대
시고 떫고 맛없다고 개살구 개복숭아
이것 참 개만도 못한, 푸념에나 달려있던
음지도 양지된다는 옳거니 맞는 말씀
21세기 신조어에 칭찬으로 딱 붙어서
개좋아, 개맛있단다 개잘났어, 개만세!
<초대시조>
폭포
노중석
사는 일
벼랑이란들
어찌 다 피해가랴
깊은 소
곤두박혀
우레소릴 낼지라도
빛 부신
무지개 한 채
덩그렇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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