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순천만
유혜영
바람의 모서리를 견디는 중인데도
꼿꼿이 일필휘지 필법을 생각한다
온몸이 붓이 되었으니
필체가 웅장하다
밀물과 썰물이 조석으로 읽고 가며
오밀조밀 새긴 문장 짠 내가 풍부하다
뻘밭을 꼭 찍어 맛보는
왜가리는 쉼표인가
한순간 철새 떼가 갈대를 필사한다
이곳의 진경을 저곳으로 옮긴다
이 세상 가장 거룩한 습지
황홀경이 살고 있다
차상
하루
류용곤
손가락 한 마디가 달 속으로 사라지고
또다시 올라오는 동쪽 하늘 아린 새벽
몇 번을 잘려 나가야 통증 없이 살아날까.
차하
소방일기
남궁중
1
너희는 날기 위해 꿈자리를 비운다지
방수화에 방화복 구두 대신 올려놓고
천 번의 눈 맞춤 끝에 새매* 되어 난다더군
2
뼈를 훑는 사이렌 물줄기 거머쥐면
불길 속 컵라면 한 끼, 면발 잘린 산소통
몇 초의 생수병처럼
물을 쫓아 뒹구는 헬멧
3
이런 밤이면 생각나요
어머니의 붉은 밥상
침상 끝을 써 내려간 처음인 듯 마지막의
그 문장 날개를 달고 눈시울을 나는구나!
*새매:용맹을 상징하는 소방공무원의 표지장이다.
지난 10년간 54명의 소방관이 순직하였다.
초대시조
기원
하순희
미안했다 잘못했다 부디 용서해라
잘 할 거라 잘 지낼 거라 그냥 그리 생각했다
어쩌면 떨쳐버리고 생각하기 싫었다
떠다니는 바람처럼 온 우주 떠돌다가
어느 하늘 어느 땅에 비가 되어 내리면
너 떠난 나무 아래서 새움이 돋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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