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침전물이 고통이 아니라 고독이었다는 걸 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이 외국인의 입주 가정부가 되어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어느 여름 오후.
스러지는 햇빛 아래 나무의 긴 그림자가 마치 자신의 인생의 퇴락처럼
힘겹게 빛과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래가던 날,
어머니는 자기 앞에 다가와 있는 상실의 세계를 보아버렸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세계를 묵묵히 응시했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두운 극장의 의자에 앉아 모든 것이 흘러가고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고통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전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심분리기 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추출되고 있는 부유물은
고통으로 보이는 고독이었다.
그 봄날의 피크닉이 오랜 우기 끝에 찾아온 찬란 뒤에 불길함을 숨겨놓았듯
모든 매혹은 고독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었다.
.
.
글이 잘 써지는 날인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13월이나
제8요일 같은 것이다.
글이란 일년 내내 잘 안 써지게 돼 있다.
커튼을 내리고 있으면 게으르거나 무기력해지기 쉽고
그렇다고 활짝 열어놓으면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햇빛이 환하고 맑은 날엔 산만해지기 마련이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기분이 가라앉아 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
기분 좋은 소식이 오는 것도 반길 일이 못된다.
기분 좋은 생각이란 한번 머릿속에 들어오면 좀처럼 다른 생각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반대로 안 좋은 소식이 왔다면 그건 말하나 마나이다.
기분 나쁜 날 글이 잘 써질 정도로 인생에 의외의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
더구나 의외란 건 주로 나쁜 방향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모든 상황이 이처럼 고통스럽게 돌아가는데도 작가에게는 책상 앞을 벗어나는
현명한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다.
대가라고 불리는 이들마저 글은 엉덩이로 쓴다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는
말로 작가의 도로(徒勞)를 독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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