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행이 나를 떼어놓든지 병원에 가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이태리 의사에게 내 이 기분 나쁜 증상을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설사 그가 영어를 안다고 해도 내가 영어로 지껄일 수 있는 병명이 고작
위통, 두통, 열이 있다 정도인데 무슨 소용인가.
나는 차가운 의료기기에 맡겨질 테고 의사는 그에 따라 처방을 할 것이다.
나는 오슬오슬 춥다가 오싹오싹 떨린다고 말하고 싶다.
내 몸은 지금 불화로를 얼름조각으로 포장해놓은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삭신이 쑤신다고 말하고 싶다. 입맛이 소태 같다고 말하고 싶다.
죽어도 이 나라에선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통역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만 생겨났다.
그걸 참고 따라다니자니 일각이 여삼추였다.
일정의 반을 소화하고 카프리 섬으로 가기 위해 나폴리를 떠나
해안도로를 따라 소렌토로 가는 길이었다.
일행에게 폐 안 끼치고 일정의 반을 소화했다는 게 힘겹게 정상에 올라
내리막길을 굽어보는 것 같은 안도감을 주었다.
유난히 아름다운 해안도로였다.
고고학이나 미술을 전공했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뭔가를 설명하고 싶어하던 가이드도
그때만은 조용히 입 다물고 파바로티의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었다.
그 버스의 음향기의 성능이 그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행복감이라고 해야 할까,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황홀경이었다.
파바로티의 기름진 고음이 절정에 달했을 때 목놓아 울고 싶은 격정에 사로잡혔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中
멀리 울산바위가 보이는 우리 마을은 앞벌만 빼고는 삼면이 짙은 숲에 둘러싸여 있다.
녹색도 극에 달하니까 지쳐 보인다.
힘겹게 저장하고 있는 과중한 수분을 언제 토해낼지 모르게 둔중한 빛을 하고 있다.
친구의 어머니 유해야 찾건 말건 내일은 나도 떠나리라,
망설이던 마음을 별안간 굳힌다.
앞벌 논배미 사이를 흐르는 도랑들도 격류로 변해 물소리가 요란한데도
이 움팍한 마을에 고인 적막은 어쩌지 못한다.
적막이라기보다는 온 세상의 침묵이 다 모여서 짜고 짠 것 같은 견고한 침묵이다.
.
그날 밤도 저 산봉우리들은 저러했을까.
그날 밤의 산봉우리는 저렇게 무심하지 않았다.
암벽은 곤두서 있었고 숲은 선혈이 낭자해서 몸을 뒤틀었다.
단풍철이었다고 해도 밤중에 붉은빛이 그렇게 드러나 보였을 리 없건만 내 심상엔 그렇게 남아 있다.
그날 밤 내 마음에 인화된 산이 진짜고, 여기 올 때마다 대하는 현실의 산이 가짜 같다.
마치 화집이나 미술관에서 세잔이나 고흐가 그린 풍경화를 보고 깊이 감동받은 일이 있다면
그후 그 그림에 영감을 준 현실의 경치 앞에 설 기회가 생겼을 때,
현실이 가짜고 그림이 진짜인 것 같은 착란이었다.
-빨갱이 바이러스 中
찬바람 난 지 언젠데 자꾸 속에서 열불이 나려고 해서 손사래로 부채질을 하다 말고
내가 미쳤지, 나는 세면대로 가서 찬물로 북북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뭐가 미쳤다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이 판국에 손사래로 바람을 내려는 건 확실히 미친 짓이지만 더 미친 짓은
남편에게 뭔가 하소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다.
오늘 온종일 내가 무슨 일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지 최소한
남편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슬쩍 운을 뗀다는 게,
여보 나 왜 이렇게 울화가 치밀고 얼굴이 화끈거리지, 했더니
그가 한다는 소리가 갱년긴가보군, 했다. 그래 갱년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화상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가 여자에 대해 뭘 안다고.
의학적인 답변으로는, 나 지금 갱년기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팔십 노인들이 모여 앉아 갱년기 타령을 하는 것을 참아내야 할 걱정으로
아침부터 울증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그건 할 소리가 아니지.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中
드디어 버스가 오고 나는 그것을 혼자서 탔다.
나는 훈이에게 몇 번이나 돌아가라고 손짓했으나 훈이는 시골 버스가 떠나기까지의
그 지루한 동안을 워커에 뿌리라도 내린 듯이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나는 그게 보기 싫어 먼 딴 데를 바라보았다.
논의 벼는 비단폭처럼 선연하게 푸르고, 옥수수밭은 비로드처럼 부드럽게 푸르고,
먼 오대산의 연봉의 기상은 웅장하고,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도처에서 내와 개울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땅 어디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뿌리내리기 힘든 고장인가.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 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 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절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니었다. 훈이를 키우는 일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러이러하게 키우리라는 새로운 방도를 전연 알고 있지 못하니, 후회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카메라와 워커 中
어젯밤에는 내내 잠을 못 자고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당신이 쓴 작품 속의 문장들이 통째로 떠오르기도 했고,
당신이 내게 베풀어준 사랑들이 구슬들처럼 잠자리를 굴러다녔습니다.
무엇보다 여기 올 때 당신을 뵙지 못하고 전화통화만 하고 온 것
(정말이지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이 후회스러워 돌아눕고 돌아눕고 했습니다.
오늘 낮에는 첼시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버려서
저도 알 수 없는 곳에 잘못 내려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참! 당신답게 더는 미련 없다는 듯이 이런 사람 눈엔 매몰차 보일 정도로
갑자기 이쪽 세상일들을 탁 접어버리셨군요.
뒤도 안 돌아보셨을 것같이 느껴지는 건 제 마음만일까요.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읽다가......
라고 하시던 말씀, 그 누구도 당신 건강을 염려하지 않게 믿음을 주시더니,
막상 아프시고는 구질구질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그렇게 훌쩍 가셨군요.
-박완서 선생님, 보셔요 中(신경숙)
소설의 가치를 정서적, 미학적, 인식적 가치로 분류해보는 일은
단순하나마 쓸모 있는 일일 것이다.
좋은 소설은 감동과 교화로 요약될 정서의 어떤 파고를 유발하거나(정서적 가치),
문장 세공술과 서사 건축술의 장관을 보여주거나(미학적 가치),
인간과 세계의 숨은 진실을 예리하게 제시한다(인식적 가치).
사람에 따라 셋 중 하나에 더 무게를 실어 자신의 소설관으로 삼기도 한다.
"감정들의 카타르시스를 행하는 것"(『시학』,6장)이 비극의 효용이라 본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정서적' 가치를 높이 사는 이들이 있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 썼든지 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뿐이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서문)
라고 단언한 오스카 와일드처럼 "미학적" 가치를 배타적으로 옹호한 유미주의자들도 있다.
"소설의 유일한 도덕은 인식이다.
실존의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떠한 단면도 발견하지 못하는 소설은 곧 비도덕이다"
(『커튼』)라고 말하면서 밀란 쿤테라는 '인식적' 가치를 지고의 것으로 격상시킨다.
그러나 위대한 소설은 이 셋을 동시에 갖고 있는 법이니,
이 분류법의 쓸모는 차라리 시시한 소설을 타박하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 셋 중 하나도 없단 말인가, 하고.
-박완서라는, 소설의 고향 中(신형철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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