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가는...기록하고 싶은 구절

늑대-전성태 소설집

바이올렛~ 2012. 11. 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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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사무실에서는 누룩 뜨는 냄새가 풍겼다.

창가는 담쟁이덩굴 자라는 벽처럼 귀살스러웠다.

유리병에 올려놓은 고구마들이 붉은 덩굴을 뻗어 창밑 히터까지 더듬어내렸다.

제때 물을 갈지 못한 병에서는 허연 뿌리들이 물크러지고

덩굴 끝에서부터 잎이 말라갔다.

열흘 전쯤 물병에 올린 고구마는 탄저병에 걸린 종자처럼 검게 썩어갔다.

어제 물갈이를 해준 병도 그새 물이 반이나 졸아 있었다.

고구마순에서 잎이 벌어졌을 때 느낀 기쁨은 잠시였다.

병섭은 보름 만에 어떤 음습한 기운에 사무실을 점령당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남방식물 中

 

그는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 있었다.

낯선 나라의 허술한 호텔방 하나를 잡아 머무르며 산책하고 독서하고 시를 짓는 일이었다.

지금 그 묵은 꿈이 실현되고 있었다.

십년 만에 얻은 안식년을 그는 완벽하게 보내게 된 것이다.

젊은 나이에 그는 시인이 되었지만 석·박사과정을 밟고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동안

정작 자신은 시 한 편 쓰지 못했다.

그는 늘 바쁜 시간을 핑계 삼았다.

그러나 그 자신 시인으로서 예민한 감각과 어떤 그리움이 서서히 마모되어 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읽어낸 수많은 책과 논문은 자신의 영혼을 위한 글들이 아니었다.

이제 이 고독한 공간에서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연애까지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리언 쏠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