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떨어진 낙엽이 아스팔트에 착 달라붙어 도배를 한 것처럼 번질거렸다.
승용차 위로 쏟아진 은행잎은 노란색 꽃차를 만들었다.
가을비는 한번 내릴 때마다 속옷 한 벌을 더 끼어 입게 한다더니
하룻밤 사이에 계졀이 성큼 깊어졌다.
-청어남자 中
산그늘이 성큼성큼 절마당으로 내려서고 있다.
산사의 늦가을 오후는 반토막처럼 짧았다.
네 시가 조금 지났는데 벌써 대숲을 덮은 해는
요사채 담장 옆의 모과나무에 걸렸다.
두루뭉술하게 살이 오른 과실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에 닿을 듯 늘어진 채 신맛을 흘리고 있다.
며칠 새 계절이 이렇게 깊어졌나!
점심공양을 들고 왔던 스님이 갈볕을 쬐라며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갔다.
-천은사 中
당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면 어쩌나?
집을 잃었던 사건은 인생에서 돌다리를 건너다 풍덩 빠졌던 실수에 불과했을진대.
그때는 왜 그리 캄캄하던지, 내 반쪽을 잃은 느낌이었어.
아내를 속이고 제 동생만 챙기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할 믿음이 안 생기더라고.
그리고 그런 일들이 한번쯤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어.
줄줄이 딸린 시댁식구들 뒤치닥꺼리나 하다 내 인생이 쫄딱 망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었지.
10년 동안 출판사에서 눈이 빠지도록 교정을 보았고 그때 막 내 작품을 써보려고 나왔을 때였지.
나를 위해 올인 해도 모자랄 시간에 누구의 뒷바라지나 하며 보낼 형편이 아니었지.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툭 끊어진 느낌이었어.
하지만 지구를 몇바퀴 돌고 돌아도 체증처럼 걸려있는 그 문제가 발목을 잡더라고......
오십 고개를 넘으면서 몸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지.
몸이 부서지니 정신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그때야 비로소 무릎이 꺾이고 세상 그물코를 조절해 가는 방법을 알겠더라고.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꼴인 자신이 훤히 들여다보였어.
깨달음은 늘 그렇게 더디게 찾아왔지.
-입산통제구역사람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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