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가는...기록하고 싶은 구절

폭식-김재영 소설집

바이올렛~ 2012. 8. 7. 16:01

의사는 어머니에게 몇가지 약을 처방했다

그는 어머니의 무의식에 리잡은 억압된 감정과 공포, 분노 따위가

곰에 의해 촉발된 거라며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심리치료를 받도록 권했다.

낮동안의 어머니는 별 이상 없이 잘 지냈다.

아침이면 기분좋게 일어났고, 끼니마다 음식을 달게 먹었으며,

매일 정원에 앵초를 돌보면서 싸이먼 씨와 우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밤이면 달라졌다. 곰이 올 때쯤이면 현관으로 달려갔다.

-'앵초'중에서-

 

저녁놀이 방의 모퉁이를 반짝 비추고는 사라진다.

해가 진 뒤의 저녁 어스름이 창을 넘어와 방 안 가득 내려앉는다.

혼자 떠도는 자에겐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존재가 물에 쓸려나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알 수 없는 고독이 심장을 가득 채워 마침내 돌덩이처럼 무거워질 때면

어째서 나는 창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거지? 하고 스스로 묻곤 한다.

-'폭식'중에서-

 

제주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나더니 이어 오동도 동백꽃,

광양의 매화, 구례 산수유가 시샘하듯 피어났다.

꽃소식이 화개장터를 지나 영취산 진달래 계곡, 벚꽃 흐드러진 진해를 넘어설 무렵엔

장인영감도 더는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온갖 신세타령에 술주정이 예사가 아니었다.

평생을 좁아터진 가게 지키다가 뒈져버릴 거라는 둥,

마나님도 없는 홀아비 신세가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는 둥,

자식들이라고 하나같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얼간이라는 둥,

입에 담기 힘든 욕까지 마구 쏟아져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봄은 꼬리에 불붙은 호랑이처럼 미친 듯이 서울을 향해 달려왔다.

말할 나위 없이 나도 똥줄이 탔다.

-'십오만원 프로젝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