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다 환하고 환하다.
산벚꽃나무가 우주에 이르도록 도미노로 피는 것을 나는 본다.
그는 산벚꽃 환한 그늘에 누워 있고, 나는 그를 처음 만난 그때처럼,
흰 빨래를 널고 있다.
빨랫줄은 내가 사는 기와집 서북단 서까래로부터 볕 좋은 동남간
산벚나무로 너그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 나간다.
그와 나 사이, 우주적인 공간으로 뻗어 나가 우리를 잇고 있는 빨랫줄을 타고
챙, 챙, 챙, 챙, 명도 높은 봄빛이 부서져 흐르고 있는 걸 나는 본다.
이렇게 환한데, 왜 구차하게 그것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
-카밀은 아직 젊었고 순수하니, 나보다 더 사랑을 믿는 게 당연했다.
사랑을 믿는다면 그가 믿는 만큼 사랑이 그의 등불이 될 터이니,
월급이 좀 깎이고 허리뼈가 부서진다 한들 왜 등불을 불어 끄겠는가.
나는 차라리 그가 부러웠다.
나이 서른에, 이미 내가 다 상실하고 만 것들을 카밀은 너무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는 사랑을 믿었고 세상을 받아들였으며 그가 품고 있는 신들에게 언제나 경배했다.
세상이 화안해요......라고, 혼절할 만큼 지쳐 쓰러져 있던 그가
산벚꽃 그늘에서 내게 건넨 첫마디 말이 그를 볼 때마다 자주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의 본성이 환하니까 그가 보는 세상이 환할 터였다.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해지세요.
다시 만나요 등의 광범위한 뜻을 가진 네팔말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만남의 의미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름다운 다리를 놓는 소통의 시작이
그 말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온 사람이었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보금자리' 라는 뜻을 지녔다.
눈의 보금자리니 밤낮없이 얼마나 고요하고 청결하고 환하겠는가.
"옴 마니 밧 메훔. 연꽃에 보배를...... 뭐, 그런 뜻이지만 상관없어요.
그냥 주문, 티베트 불교, 옴 마니 밧 메훔. 옴 마니 밧 메훔...... 해보세요.
계속, 열 번만요. 기분이 좋아져요."
-밤이 깊을수록 너른 창으로 들어오는 설산들의 흰빛은 더욱 희고 고요해졌다.
한가운데 마차푸차르가 있었고, 왼편 오른편으로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있었다.
더 멀리 물러나 있는 흰 봉우리는 아마도 높이 8167미터의 다울라기리일 터였다.
동쪽 부탄의 동단에서부터 서쪽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밧까지,
지구의 중심을 꿰뚫고 흐르는 대히말라야의 장엄한 등뼈를 나는 보고 있었다.
내가 죽고 난 후 천년만년이 지나도 히말라야는 여전히 고요하게 남을 게 틀림없었다.
그 거대한 '눈의 거처'에서 보면, 한 인간의 탄생으로부터 죽음까지,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짧은 '임시거처'일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눈물이 반짝였다. 그제서야 나는, 어머니가 불꽃이 되어 낙하하는 아버지 카밀을 받아
안았다고 느꼈던 순간이야말로 이만큼 떨어져 있었던 그녀로선 가장 절대적인 고독과
만나는 순간이었다는 걸 서늘히 깨달았다.
그녀는 그 순간, 사랑의 승부에서 아마도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거나, 그것은 그녀의 오해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결코 누굴 사랑으로 이기겠다고
생각했을 리도 없고, 또 아버지 카밀과 함께 죽자고 생각했을 리도 없었다.
어머니는 다만 깊은 사랑으로 불꽃이 된 아버지를 당신 품 안에 안아서 살릴 수 있다고
믿었을 터였다. 갈망과 헌신의, 모귀가 어머니를 아버지에게 밀어냈을 것이었다.
함께 죽는 것이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잔인하고 뜨거웠던 하나의 카르마가 완성되는 순간이었을 것이고,
또 다른 카르마들이 탄생되는 오묘한 틈이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참된 본성의 빛이 떠오르는 다르마타 바르도의.
'눈길 가는...기록하고 싶은 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허수아비춤-조정래 (0) | 2012.02.06 |
|---|---|
|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0) | 2012.02.01 |
| 바이올렛-신경숙 (0) | 2012.01.07 |
| 박태준의 어록 (0) | 2011.12.14 |
| 클린(씻어내고 새롭게 태어나는 내 몸 혁명)-알레한드로 융거 (0) | 2011.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