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여행기, 풍경

무등산 설산에서의 잊지못할 추억

바이올렛~ 2005. 12. 22. 17:28

무등산 설산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

 

 

거듭되는 송년모임으로 몸도 피곤하고 장난 아니게 추운 날씨 때문에

이번 산행을 가야 하나 말아야하나 몇번을 망설였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는 무등산 설경은 너무나 멋있어

놓치고 싶지 않은데 불안하긴 하고...

칼라한테 누나 생일에 케잌 사오라고 압력을 넣어

쵸코파이 사다가 축하받기로 약속했데 그것때문에 빠질수도 없었다.

안가려면 칼라한테 전화해서 약속을 취소시켜야 되는데

정작 전화번호도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런!! ㅠ.ㅠ(누나 맞어?)

 

전날인 토요일 저녁, 바람은 거세게 불고 날씨가 엄청 추웠다.

그 추위 속에 신촌 홍대 앞에 모여 초등학교 송년 모임을 치르면서 술잔이 자꾸 오간다.

소주에다 복분자에다 장소 옮겨서 코로난지 뭔지 하는 비싼 맥주에다

또 옮겨서 와인에다 젊은 사람들이 득시글하는 곳에서 온갖 분위기는 다 내고 다니는데

머릿속은 계속 이 자리에 있어야 되는지, 내일 산에 가는건 어찌해야 되는지 결론이 안난다.

바로 전날도 산악회 송년모임에서 너무 늦은지라 졸립고 피곤한데

내가 빠지면 분위기 깰까봐 어쩔수 없이 그냥 친구들과 어울린다.

마지막에 해장국집까지 갈뻔한걸 이젠 안되겠다 싶어 헤어지자며

택시를 잡아타고 보니 새벽2시, 파김치가 되어 간신히 세수만 하고 잠자리에 곯아떨어진다.

아침에 어떻게 눈을 떠 보니 여섯시가 되어 있다.

늦겠구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간신히 시간에 대어 하이웨이주유소 앞에서

버스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무등산으로 향할수 있었다.

 

호남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만큼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서울에선 구경할수 없었던 눈이 하얗게 덮여 바라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11시 30분쯤 드디어 무등산 입구에 도착한다.

많이 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남쪽이라선지 별로 춥지 않아

겹겹이 껴입은 옷이 좀 무색해진다.

아이젠을 차고, 스패츠를 두르고 무릎까지 쌓여 있는 눈길을

앞사람이 만들어 놓은 발욱을 따라 한줄로 올라간다.

입구에 아름드리 서있는 소나무의 파란 잎새위에 쌓여 있는 눈이 정말로 탐스럽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고 있는 설경, 환상적으로 펼쳐진 풍경들에 감탄하면서 

이런게 겨울 산행의 묘미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론 처음 해보는 겨울 산행이니 더욱 신기하다.

 

원효사를 지나 1시간쯤 올랐을까 당뇨팀의 혈당보충이 시작됐다.

감자님이 막걸리를 꺼내 흔드는 사이 백호님이 첫잔의 증거를 남긴다고 카메라를 댄다.

지난주 불곡산에서 술병든 사진으로 첫잔의 주역이 된 칼라가 기겁을 하고

얼른 술병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한바탕 웃으면서 막걸리로 혈당을 보충하고 힘을 내 다시 올라간다.

얼마쯤 올라가는데 어따대구님이 귀여운 모습으로(^^) 뛰어서 내려온다.

아까 막걸리 마신데서 스틱을 놓고 왔다고 다시 가지러 가는 길이란다.

막걸리가 얼마나 맛있으면 그리 정신을 놓으실까, 어따대구...ㅎㅎㅎ

 

▲장불재

 

눈이 만들어 놓은 환상적인 설경에 시선을 뺏겨 사진도 찍고 하느라

후미팀의 진행이 자꾸만 늦어진다.

할수없이 꼬막재를 넘어가며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뛰기 시작한다.

헛둘 헛둘 구호까지 넣어가며...

억새밭 능선을 지나 규봉암쯤에서 회장님등 일행과 만나

쭉 일렬로 서서 단체 사진찍는다.

줄이 길다보니 왕언니께서 나는 안 찍힌것 같다고 투정을 부리신다.(죄송..^^)

산이 깊을수록 쌓여있는 눈의 두께가 점점 두터워져 보인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 허리까지 쌓여있는 눈으로 덮여 온 사위가 하얗다.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 속에 안겨 있는 나, 말할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아이젠을 착용해선지 눈길이라고 특별히 힘든건 모르겠는데

알게 모르게 힘이 부쳐는게 어젯밤 숙취탓인것 같다.

칼라가 배낭을 달래서 대신 메고 가준다.

동생 하나는 정말 잘 둔것 같다.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을 믿고 내가 자신있게 나올수 있었지, 동생 고마워^^*

 

서석대쪽으로 가면서 눈보라도 날리고 좀 추워지는데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속이 별로 좋지 않아 아침으로 나누어준 김밥을 먹지 않고

휴게소에서 우동 한그릇 안되게 먹은게 다인데 시간은 오후 2시가 되어간다.

눈속에 앉아 뭘 먹는다는게 여의치 않은데 다들 배가 고프다고 해

할수없이 눈밭을 다져 자리들을 펼친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10분정도만 더 가면 좋은 자리가 다는 바람에

개그팀 다섯분과 나는 앞으로 더 진행한다.

그런데 여간해서 좋은 자리라는게 눈에 띄지 않아

대충 자리잡아야 되는게 아닌가 걱정하노라니 백호님이

설마 서울에서 예까지 왔는데 이 사람들이 거짓말 했겠나 계속 가보자고 한다.

그럼 그렇지 마침내 식탁처럼 만들어진 자리가 나타난다.

컵라면에 보온병에서 꺼낸 뜨거운 물을 붓고, 감자님은 보온 도시락을 꺼내고,

나는 에 꼬불쳐둔 김밥을 꺼낸다.

라면이 익는 사이 어따대구님의 뜨거운 숭늉으로 우선 추위를 녹인다.

식사가 시작되면서 손이 시려워 장갑을 끼고 젓가락질 하려니 쉽지가 않다.

여기서도 개그가 빠지면 안되지, 어쩌다 얘기중에 내가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말을 하자

칼라가 그럼 아리랑하고 쓰리랑은 누가 낳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미안하지만 무식해선지 도대체 모르겠어서 대답을 못하자 아라리가 낳았단다.

뭔소린가 뻥해서 있으려니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에~ 헤에~

노래를 부르는 칼라, 다들 웃는다.

 

▼서석대

 

점심을 마치고 서석대 쪽을 오르는데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마스크를 꺼내 쓰고 모자를 덮어쓰며 무장을 다시 한다.

눈뜨기가 힘든 눈보라속을 뚫고 서석대로 향하면서 비장해지는기분이

우리가 지금 레스트를 정복하러 가는게 아닌가 싶어졌다.

춥고 손도 시리지만 눈보라가 만들어내는 가히 환상적인 설경은

조금도 고생스럽다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설경앞에 마냥 좋고 설레이기만 한게 오기를 잘했다고 몇번이고 생각한다.

쌓인 눈에 악동같은 개그팀이 눈썰매를 타고 싶어한다.

혹시나 싶어 넣어왔던 비닐봉지를 꺼내주자 아니나다를까 신나게들 타고 달린다.

신기한지 왕언니까지 타보시고 나중엔 회장님과 늘푸른님도 타신다.

 

용추삼거리쯤에서 모처럼 여럿이 만나 사진을 찍는다.

혼자서도 찍고 끼리끼리 모여서도 찍고...

회장님이 모처럼 같이 찍자고 해 폼잡고 자세 잡다가 뒤로 꽈당 넘어진다.

사람들은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난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려는데

우와~ 회장님 힘이 어찌나 세신지 꼼짝을 못하겠다.

늘푸른님이 이 순간을 놓칠리 없다. 연속해서 찰칵-

각본에 없는 러브스토리를 연출하고  시간이 많이 지체된 관계로 하산길을 잡아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중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무덤 주변에 너른 공간이 보인다.

늘푸른님이 또 연출을 시도한다.

백호님한테 정말 백호가 되시라고 눈 위에서 구르게 만든다.

망설이던 백호님 시키는대로 몇바퀴 굴러 하얗게 눈을 묻히고 사진을 찍는다.

장난끼가 발동한 늘푸른님 이번에는 나를 눈위에다 또 몇바퀴 굴리고...

장난하는 김에 먼저 구른 백호님과 또 러브스토리 연출하며 모델이 되어준다.

누가 나 탤런트 안시켜주나? 푼수 아줌마 연기 하라면 잘할것 같은데...-_-;;

 

거의 하산해갈 무렵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입구 중턱쯤에 이르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기름진 냄새가 풍기는게

옛날 시골에서 잔칫집에 온 향수를 느끼게 한다.

회장님과 우리들 몇명이 비닐포장을 들치고 들어가 돌에 구운 삼겹살에

막걸리와 소주잔을 기울인다.

돌에 구운 삼겹살을 배추쌈에 싸먹는 맛, 뭐라 설명할 수 있을런지... 

산자락에 어둠이 내리며 길 옆으로 나 있는 굴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하얗게 눈이 덮여있는 산길을 걸어오며 내가 이 길을 언젠가 와 봤던듯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주차장으로 도착해 닭백숙에 끓인 떡국을 먹으며 칼라가 사온 초코파이에 촛불 꽂아

여러명이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

정상에서 하려던걸 추운 관계로 내려와서 했는데 아마 잊지 못할 추억이 될것 같다.

곰마워요, 멋쟁이 울님들!! ^_*

 

 

▼입석대

 

6시 30분쯤, 완전히 어두워져 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차에 올라 귀성길에 오른다.

소등을 하고 수면을 취하는둥 마는둥 하는 사이 11시쯤 서울에 도착한다.

내 생일파티 해준다고 몇명이서 도시가스 앞에 내려 염창동 굴집으로 간다.

눈길을 산행하느라 다들 피곤할텐데 미안하기도 하고, 계속된 송년 모임으로

나도 녹초가 되다시피해 그냥 가자 하니 그게 아니라고 같이 모였다 가잔다.

어따대구님이 케잌을 사와 식당에서 촛불켜놓고 칼라가 일어나 연설을 한다.

"여러분, 우리 풀꽃향 누나가 생일을 맞아 축하파티를 하려 하니 

시끄러워도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개그팀들 축하 노래라고 불러주는데 기가 막혀!!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이 험한 세상에 왜 태어났니~~~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는데 사람들은 웃으면서 재미있어 한다.

외간남자들한테 생일 축하받기 처음이지 않냐고 백호님이 묻는다.

당연히 처음이다.

너도나도 케잌의 크림을 발라 내 얼굴에 묻혀 주고 감자님은 폰카로 사진을 찍는다.

꿈같이 아름다운 설경속에서 보낸 하루가 이렇게 웃음속에 막을 내렸다.

 

오늘을 축복해준 우리 님들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예요.

정말 감사드려요!!


*사진은 늘푸른님의 사진을 훔쳐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