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여행기, 풍경

노자산 일출과 환상의 한려수도 탐방

바이올렛~ 2005. 11. 20. 16:08

노자산 일출과 환상의 한려수도 탐방

 

등우에서 처음 가보는 토요 산행이고, 산악회에서 처음 가보는 무박 여행이다.

친구와 부동산사무소를 같이 하는 관계로 일요일 외엔 따로 휴일이 없어

토요산행을 하려면 한달에 한번 있는 월차를 이용해야 했다.

그 월차를 이번에 미련없이 이용해서 다녀온 무박의 테마여행은 생각보다 적은

28명의 인원으로 조촐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금요일 밤 11시, 당산역에서 최종 인원을 점검하고 거제도 노자산으로 출발하며

회장님의 몇마디 인사가 있은 뒤 다음날의 순조로운 산행을 위해 취침 시간이 주어졌다.

전날, 처음 무박여행 간다는 설렘으로 잠을 설친지라 피곤해서 잠이 잘 올줄 알았는데

영 잠이 안 온다.

그래도 꿋꿋이 눈 붙이려 애쓰는 동안 시간은 흘러 새벽 다섯시가 될 즈음,

산행 준비를 위한 화장을 한다.

화장품을 바른 채 잠드는 것을 못 참는지라 맨 얼굴에 입술만 바르고 차를 탔었다.

물휴지로 닦아내고 열심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찍어 바르느라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잠을 설친 불편한 몸에 애쓰며 화장하느라 나중엔 생목이 올라오며 멀미기로 머리가 띵하다.

 

6시 좀 넘어 노자산 입구에 도착해 랜턴 키고 안 좋은 컨디션과 멍한 느낌으로

일행을 따라 오른다. 

쌀쌀한 날씨 속에 아직도 침묵에 잠겨 있는 노자산,

낙엽만이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차고 맑은 하늘에 보름을 지난 이지러진 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걸려 있다.

음력으로 10월 17일을 보낸 저 달이 하루 지난 새벽인 오늘은

밤 사이 더 작아졌을까 쓸데없는 궁금증이 인다.

나뭇잎을 떨궈낸 마른 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달빛과 차가운 새벽 공기,

몸이 추우니 마음도 시리다.

 

7시 30분쯤 됐을까?(다음부턴 후기를 위해 시간을 기록해 둬야 할것 같다.)

노자산 전망대에서 몽돌해변으로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는걸 바라보며

부지런히 사진들을 찍는다.

이런 일출을 본다는 게 정말 얼마만인지...

사람이 게으르고 튼튼하지 못하다 보니 일출을 본다는 게 쉽지 않다.

4~5년 전인가, 새해 일출을 본다고 정동진에 충동적으로 승용차 타고 갔다가

며칠을 앓았었다.

사람은 많고 얼마나 춥던지 몸이 불편하니 제대로 감동할 여력이 없었던 생각이 난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나니 조금씩 정신도 들고 몸이 추슬러진다.

8시쯤 노자산 정상에 올라 가져온 간식들을 내어 놓고 먹으며 잠시 식을 취한다.

아침과 점심이 제공된다기에 밥 싸올 생각을 안했는데 폭탄님이 도시락을 가져와

나와 데이지님의 언니까지 해서 셋이 조금씩 나눠 먹었다.

설탕 안 넣고 담근 매실주까지 깨끗이 비우고 따끈한 커피를 마시니

포만감에 마음이 충만해진다.

 

 536m 고지로 높지 않은 산이기에 쉽게 생각했던 산이었는데 하산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바닥에 자갈과 돌이 많아 매실주로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 몸을 계속 신경쓰이게 한다.

폭탄님과 맨 후미에서 천천히 내려가며 늦가을 아침 노자산의 정취를 느껴 본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숲,

잠에서 깨어난 산이 재재거리며 인사를 하는 듯 하다.

일찍 오르지 않으면 느껴볼수 없는 느낌, 상쾌하다.

많은 부분 잎을 떨궈낸 사이로 아직도 고운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그들의 갈망이 어떤 미련을 갖게 한다.

10시 30분, 학동 몽돌해변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해 닭고기 백숙에 끓인 떡국으로

늦은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다들 한 그릇씩 듬뿍 떠서 맛있게들 먹는다.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비경의 한려수도를 탐방하려 통영의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1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걱정되는 컨디션으로 배멀미 할까봐 마신 멀미약 탓에

잠이 막 쏟아진다.

비몽사몽, 있는대로 잠에 취한 채 통영 선착장에 도착해 배에 오른다.

1시 40분, 한산도에서 내려 충무공 이 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둘러본다.

한산섬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애절한 구국충정의 시를 읊으셨던

이순신 장군의 그 수루(戍樓)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제승당을 둘러 보고 참배하는 자리에 가 머리 숙여 참배하고 나온다.

 

확실히 이곳은 남쪽이라 아직도 가을이 많이 남아 있어 멋진 경치를 보여준다.

느티나무는 마른 잎새를 매단 채, 단풍나무는 아직도 고운 단풍으로,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윤기 흐르는 파란 사철나무와 동백, 아왜나무 등과 어우러져 

멀리 떨어져서 보니 푸른 바다와 함께 꿈속인 양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2시 25분, 배로 다시 돌아와 물살을 가르며 매물도와 해금강으로 배가 달린다.

한산도와 여수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붙인 한려수도를 가르는 뱃전으로

넘실대는 파도가 부딪쳐 와 생기는 하얀 포말...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이런저런 사연들이 붙은 섬들을 탐방하면서

또다시 멀미약에 취해 잠이 쏟아진다.

그래서 잠이 들었다 구경했다 하느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해

이 좋은 풍경들을 자세히 표현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내가 얼마나 잠에 취해 있었는지 나중에 회장님이 왜 나와보지도 않느냐고 한소리 하시더니

탐방을 끝내고 횟집에서 내 옆에 와 앉으며 텐더님이 또 흉을 보신다.

"나 있지. 풀꽃향님 자는 거 사진 다 찍었다?"

정말이예요? 어디요? 하며 사진 보자해서 보여 주는데

누군지 콧구멍에 젓가락 꽂고 그 부분만 찍은 사진이다.

어휴, 다행이다.

아무리 얼굴이 안 보이는 콧구멍 사진이지만 이 사진을 보고

누가 풀꽃향이라 믿겠는가. 코밑에 수염 난 자국까지 듬성듬성한데...

애교 많으신(?) 진규님이 왈

"아까 풀꽃향님 잘 때 텐더가 젓가락으로 장난칠라 그랬다.

그랬는데 이 언니가(앞에를 가리키며) 숙녀한테 그러는거 아니라고 말려서 안했다."

그래도 장난끼가 동한 텐더님은 이미 사고 쳤는데 말린다고 안할쏘나며

이미 사진 찍었다고 우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아니라고 안심한 나는 입에서 살살 녹는 회를

열심히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경치를 감상한다.

저물어 가는 바다는 낮에 본 느낌과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조금은 쓸쓸한 듯, 어디론가 어서 가야 할 것 같은 고적감에 가슴이 가라앉는 듯 하다.

 

6시 30분, 모든 일정을 끝내고 귀경길에 오른다.

여기서도 멀미약의 진가가 여지없이 나타나 내내 또 잠만 잤다.

하이웨이 주유소에서 내리니 새벽 1시가 넘어 있다.

그래도 다음 날, 출근을 안 하고 푹 쉴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토요 산행의 가장 좋은 점이 이점인 것 같다.

다음날 푹 쉴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