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가는...기록하고 싶은 구절

내 젊은 날의 숲-김훈 장편소설

바이올렛~ 2022. 6. 9. 17:25

*나무들도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인지, 멀리서 새벽의 여린 햇살이 다가오면 잔설 속에서 봄을 맞는 숲은 짙은 풋내를 풍겼다.

자등령 숲에는 한겨울에도 봄이 숨어 있어서 햇살이 곧은 한낮에는 산의 젖은 날숨이 능선 위 허공에 엉겨 있었다.

숲에는 계절이 포개져 있었다.

 

*저물 때, 숲은 낯설고, 먼 숲의 어둠은 해독되지 않는 시간으로 두렵다.

저물 때 모든 나무들은 개별성을 버리고 어둠에 녹아들어서, 어둠은 숲을 덮고 이파리들 사이에 가득 찬다.

 

*가을에는 숲의 힘이`물러선 자리를 빛들이 차지한다.

잎이 떨어져서 나무와 나무 사이가 멀어진 공간에 빛이 고이고 빛들은 시간에 실려서 흘러가는데, 빛에 시간이 묻지 않는 것처럼 시간에도 빛이 묻지 않았다.

봄에, 나무는 새잎을 내밀어서 스스로가 빛을 뿜어내는데, 가을에 나무는 잎을 떨군 자리에 빛을 불러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