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빈
서숙희
빈, 하고 네 이름을 부르는 저녁이면
하루는 무인도처럼 고요히 머물고
내 입엔 셀로판지 같은
적막이 물리지
어느 낮은 처마 아래 묻어 둔 밤의 울음
그 울음 푸른 잎을 내미는 아침이면
빈, 너는 갓 씻은 햇살로
반듯하게 내게 오지
심심한 창은 종일 구름을 당겼다 밀고
더 심심한 나는 구름의 뿔을 잡았다 놓고
비워둔 내 시의 행간에
번지듯 빈, 너는 오지
<신인상>
물구나무 서기
류미야
절벽을 오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스스로 벽이 되어
칼바람도 들이는
한 그루 푸른 나무로
발춤 추며,
날아오르며,
<신춘시조상>
구멍
김나경
기둥이 풀려있는 단추를 그러안은
헐렁한 하품이다
배고픈 결속이다
열리고 닫히는 것이
지금 잠시 흔들린다
생명이 없는 것은 그 어둠을 알 수 없지
맨 처음 잠겼으니
맨 나중 풀린다는
입술이 어처구니없게
헛소리를 물고 있다
소통이나 화해 같은 말랑하고 둥근 약속
나가려는 너를 잡고
매달리다 떨어져도
한 가닥 실오라기는
변치 않을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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