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여행기, 풍경

김유정의 숨결과 함께 한 금병산 산행

바이올렛~ 2011. 12. 12. 18:26

겨울들어 날씨가 점점 추워지며 산에 가는 것도 슬슬 꾀가 나기 시작한다.

일요일은 그냥 집안일 대충 해놓고 따뜻한 방에서 편히 쉬고만 싶어진다.

그러나 가을동안 산행하면서 이제 겨우 비실체력을 벗어난것 같은데

한달에 한두번은 산에 가줘야 그나마의 체력이 유지되겠지 싶어

큰맘 먹고 참석꼬리를 달았다.

 

그런데 꾀가 나는 사람이 나만 있는게 아닌 모양이다.

금요일 쯤 채송아한테서 문자가 오기를 전날 친구들이 모임하자고 난리라며

아무래도 산에 못갈것 같다고 어떻게 하냔다.

날은 추워진대지, 나도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석한다고 꼬리 달았는데 약속은 지켜야지 싶었다.

채송아한테도 그런 내용으로 답신 보내며 너도 약속지켜라 했다^^*

 

약속시간인 일요일 아침 9시 50분, 상봉역에 도착하니

채송아도 벌써 와 있고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모여 있다.

약속을 귀하게 지켜주는 친구들이 오늘따라 더 미더워 보인다.

10시 좀 넘어 금병산을 향하여 13명의 친구들이 경춘선에 몸을 싣는다.

고수를 따라 산에 다니며 늘은 건 체력뿐만이 아닌 것 같다. 

오늘 타는 경춘선도 처음 타보고, 전에 타던 공항철도도 처음 타보며

왠지 세상살이에 부쩍 더 눈을 뜬 느낌이다.

 

며칠 전에 향기가 사줬다고 '향기마님의 하사품'이라 쓴 호두를

고수가 나누어 주고, 채송아의 귤로 입가심까지 하면서 재잘재잘, 

초등학생들 소풍날처럼 열차 안이 시끌시끌 즐겁게 얘기하며 간다.

전에 신남역이었다가 바뀐지 얼마 안되었다는 김유정역에 도착,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세나를 만나 기념으로 단체사진 찍고

자기소개 시간도 갖고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해발 652m의 금병산은 그리 힘들지 않은 흙산인데다

낙엽이 푹신하니 깔려 더 편한 느낌이다.

하늘을 찌를듯 곧은 모습으로 쭉쭉 뻗어있는 낙엽송 군락을 지나니

때때로 명패를 단 나무들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관을 조성하면서

작품의 배경이 된 금병산에 더 공을 들였는지 

명패에 덧붙여 놓은 설명들이 인상적이다.

 

몇가지 기억나는 설명을 더듬자면,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부르는데

두견새가 밤새 피 토하고 울어 그 피가 붉게 물들어서 두견화란다.

철쭉은 연달래라고도 하는데 진달래에 이어 연달아 핀대서 연달래란다.

그런데 철쭉꽃에는 독이 있어 벌들도 멀리 한다고 쓰여 있으니

사람이나 식물이나 독하면 가까이 하는 친구가 없어 외로운가 보다.

오규원 시인이 "한 잎의 여자"에서 쓴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여자' 를

본 기억으로 산행할 때마다 유심히 봤던 물푸레나무는

가지를 잘라 물에 담그면 물을 푸르게 물들인대서 물푸레나무라 한다.

그 외에 층층이 꽃을 피운대서 층층나무라 이름 붙은 층층나무가 보이고

단풍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전나무가 보인다.

 

춘천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금병산 정상을 찍고 좀 내려와서

적당한 장소를 골라 눈밭을 다지고 앉아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다.

차가운 도시락만 먹었으면 무척 추웠을텐데 손 큰 완숙이가

여러명이 먹을 떡만두를 준비해 와 따끈한 떡만두로 몸을 덥힐 수 있었다.

들어온지 얼마 안된 스님친구도 손이 큰지 먹을걸 많이 준비해 오고

솔방울이 과메기 가져 오고, 제철과일이 아닌 은수니의 딸기,

민똘친구의 보온통에 담아 온 육개장 등...

필선친구 말마따나 이번 12월까지만 먹고 내년부터 살빼야겠다는

실리적인 결심을 하게 만들만큼 먹거리가 넘쳐난다.

 

올라올땐 덥더니 점심을 먹고 나자 추워진다.

눈길에 발이 미끄러울까봐 아이젠을 하고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거의 다 내려와서 고수가 뒤쳐져 안보이는 완숙이를 돌아보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한바퀴 구른다.

얼마나 놀랬는지 모두들 놀래서 쳐다보고,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어서

안심이 되자 그제서야 모두 웃는다.

 

금병산은 '김유정 실레이야기길'이라 해서 그가 쓴 소설의 배경따라

코스마다 이름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하산길에서 본 안내판에 의하면 산골나그네길, 만무방길, 금따는 콩밭길,

봄봄길, 동백꽃길 등 여러 코스가 있던데 우리는 동백꽃길을 온 것 같다.

계숙이란 들병이의 꾐에 빠져 근식이가 자기 집의 솥을 훔쳐나오던 한숨길을 지나

김유정 문학관을 들러 본다.

1930년대 향토색 짙은 소설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김유정의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며 30세란 나이로 요절한

그의 불운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뒤풀이로 고수의 친구가 운영하는 본샤브샤브 집에 들러

맛있고 푸짐한 샤브샤브로 저녁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날은 춥고, 겨울되면서 더욱 부실해진 무릎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할수 있어 너무나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