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여행기, 풍경

시간으로의 여행, 남한산성에서

바이올렛~ 2011. 11. 21. 14:23

 

가을이 저물어가면서 열감기라도 앓듯 속앓이 하던 가슴도

이제 확실히 평온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러는 동안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려 말은 더 걸쭉해지고

불쑥불쑥 농담도 잘 뱉아내 친구들 말마따나

생긴 거랑 어울리지 않게 입으로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이제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음을 느낀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란 시에서 나오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의

그 누님이 된 것처럼...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눈 뜬 일요일의 아침,

마천역에서 여덟명의 친구들이 만나 남한산성을 오른다.

날씨는 티하나 없이 말 그대로 쾌청이었고,

하늘은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쨍하고 금이 갈것처럼 투명하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으로 추울까 염려했던 것과 달리 

산을 오르면서는 양지쪽이어선지 오히려 더워 땀이 흐른다.

 

지역구인 호수가 이끄는 대로 아직도 고운 단풍잎이 남아있는

소로로 접어들어 낙엽이 수북히 쌓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이런 길 같으면 얼마든지 갈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별로 힘들지 않는다 하면서도 산은 산이었다.

뒤에서 빌빌거리며 같이 가던 채송아가 저질체력은 어쩔 수 없다며

우리 참 뻔뻔하게 잘도 따라다닌다고 한마디 한다.

뭔가 좀 모자라는 부분에서 동지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혼자 뒤쳐지면 불안할 텐데 옆에서 같이 동행하는 친구가 있음에

나만 그런게 아니란 생각에 한편으로 많은 안심이 된다.

 

서문 쪽으로 해서 남한산성에 올라서자 큰 소나무들이

우뚝우뚝 서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몇년을 저렇게 서 있었을까,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소나무에

저절로 찬탄의 눈길이 보내지며 왠지 숙연해진다.

소나무 뿐 아니라 신갈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이름표를 붙인 채 우람하게 서 있어 이곳이 얼마나

긴 역사를 지닌 곳인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남한산성의 성곽 위로 천년의 바람이 분다.

흐릿해진 기억 속 어딘가에서 오래 전 배웠던 병자호란의 핏빛 냄새가

훅 끼쳐온다.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던 인조임금이 청의 장수에게 굴복했던 그때도

이렇게 바람이 불었을까.

인조 15년(1637년) 1월 30일 아침에 임금과 세자와 신료들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 청진에 투항했다 한다.

이름하여 '삼전도의 굴욕'...

참으로 뼈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선조들의 피와 상처와 울부짖음이 환영처럼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조상들이 흘린 피의 댓가려니... 

빚을 진 듯 마음이 편치 않아 점심 먹을 때 제일 먼저 술을 달라 해

고시레 하면서 옆에다 뿌렸다.

 

오늘 점심은 호수의 따뜻하게 덥혀온 오리로스와

채송아의 잡채로 해서 다른 때보다 한결 풍성했다.

김장하면서 가져온 김치들도 맛나고, 들고 온 술도 달고,

쌀쌀한 날씨 속에서 마시는 커피향은 유난히 더 짙게 풍긴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점심식사 후 수어장대를 거쳐 하산해

호수가 찬조하는 찜질방으로 들어가 모처럼의 휴식을 취한다.

오면서 내가 수수부꾸미와 떡을 사고,

찜질방으로 직접 온 솔방울이 식혜를 사 오고,

누군가가 맥반석 계란과 맥주를 사 오고,

과일도 내놓고 해서 마시며 땀내며 하하호호 웃음꽃이 벌어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저녁 여섯시 쯤 헤어져 나온다.

집이 일산인 희망이가 지나는 길에 내려주마고 태워다 줘

집앞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어 더 좋았다.

깊은 가을의 남한산성을 함께 오른 친구들, 함께 해서 즐거웠다.

우리 다음에도 함께 산행하며 더욱 건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