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사백 년 전 띄운 편지
"남들도 우리처럼 이런 사랑 할까요?"
*월영교 달빛 아래 편지를 읽습니다
사백 년 시공을 넘도록 다 못 부른 당신아!
그리움 올올이 엮어 머리칼로 칭칭 감아
애끓는 마음 녹여 씨 날줄 수를 놓고
마지막 가는 발걸음 자욱 자욱 적셨네
자네와 나 새긴 정 찬찬히 읽으시고
꿈 속에 꼭 오시어 여쭙건 답해주오
누구를 아기와 원이는 아버지라 부를까요?
-김정애
*경북 안동에 있는 댐.
400여 년 전 무덤 속에서 머리칼로 삼은 미투리와 손편지가 발견
<차상> 바람집
땅에서 솟아났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멀쩡한 내 집 마당 삭정이 두서너 개
치우면 치운 그 자리 다시 거기 놓인다
무심히 올려보니 하늘에 집이 있다
세상에 떠밀렸나 전봇대 끝에 앉아
온몸의 침을 토하며 버무려낸 까치 한 쌍
나뭇가지 천육백 개 들어간 집이라고?
얼기설기 엮어낸 하늘아래 첫 동네
저 허공 무사하기를, 화살기도 날려본다
-김미영
<차하> 백세시대
'가족처럼 모신다'는 광고 걸린 요양병원
백세 꿈에 저당 잡힌 또 한 생이 기탁 된다
이승의 마지막 주소 적어두는 통과의례
제 나이 헤는 것이 죄 짓는 것만 같아
세상사 인연의 끈 스스로 잘라내는
허공에 붙박은 시선이 한순간 흔들린다
세월에 잘린 기억들 꽃잎처럼 흩날리고
얕은 꿈길 어디쯤에서 무너지는 생의 나이테
노을진 서녘하늘에 붉은 별이 돋는다
-김귀현
<초대시조> 이면지가 쌓인다
방심하다 모인 감정 새 노트가 될 것이다
조만간 쓸 것이다 쓸 일이 있을 것이다
한 번만
사용한 서운함이나
두 번 볼 일 없으리라
쓰다만 감정마다 X표를 그리면서
뒷장을 기다린다 기다리다 뒷장이 된다
우리는
뒷장만 가졌다
버려질 걸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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