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한 사람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석창포와 자금우 화분을 햇볕을 따라 옮겨 주고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 주면서
그 잎과 열매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
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한밤중 이따금 기침을 하면서 깨어난다.
창문에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창문을 열었을 때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온 천지가 흰 것을 보면
내 가슴 또한 따뜻해진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살아 있을 때
다른 존재들과 따뜻한 가슴을 나누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마음의 주인이 되라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꾲을 여유조차 없다.
그런 마음을 돌이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삶의 종점에서
살 만큼 살다가 삶의 종점에 다다랐을 때
내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물질이든 명예든 본질적으로 내 차지일 수 없다.
내가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진정으로 내 것이 있다면 내가 이곳을 떠난 뒤에도
전과 다름없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평소 타인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 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옛말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업만 따를 뿐이다'라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
간디는 일찍이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나누는 일을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현재의 당신
무슨 소리를 듣고,
무엇을 먹었는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현재의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이 쌓은 업이다.
이와 같이 순간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 간다.
명심하라.
회심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내 삶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 곧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삶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맺힌 것은 언젠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생에 풀리지 않으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좋아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일이다.
그리운 사람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울림이 없다.
영혼의 울림이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산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묵은해와 새해
누가 물었다.
스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다음 순간을, 내일 일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학명선사는 읊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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